백영심(58) 간호사는 처음부터 간호사란 직업이 꿈이 아니었다. 제주한라대 간호대 1학년 여름방학, 봉사활동으로 여수에 애양원을 찾았다. 백 간호사는 “한센병(나병) 환자를 돌보며 왜 간호 공부를 하는지 알았다”며 “간호를 통해 사랑을 실천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평생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고려대 부속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그는 27세 아프리카로 떠났다. 백 간호사는 “당시 결혼적령기라 평범한 주부로 살 수도 있었지만,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꿈을 실천하기 위해 과감히 사표를 쓰고 배낭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30년째 의료 봉사를 해온 백영심 간호사가 20일 제8회 성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성천상은 JW중외제약 창업자인 고(故) 성천 이기석 사장을 기려 2013년 제정됐다. 백 간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벅차고 영광스럽긴 하지만 이번 코로나를 비롯해 현장에서 고생하는 여러 의료진들을 대신해서 받은 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말라위의 나이팅게일
백 간호사는 아프리카 최빈국 말라위 사람들 사이에서 ‘시스터(sister) 백’이라고 통한다. 그를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0년 케냐로 건너간 뒤 1994년 의료 환경이 더 열악한 말라위로 옮겨갔다. 말라위에서는 의사를 보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백 간호사는 “당시 말라리아에 걸렸었는데 수십 킬로미터를 가 겨우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라며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말라위로 향했다”라고 말했다.
의료봉사를 시작한 처음에는 이동진료차량으로 말라위의 극빈 지역 곳곳을 돌아다녔다. 현실은 참혹했다. 말라리아 치료제나 항생제를 제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을 병원에 가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을 위해 비를 막고 뜨거운 햇볕만이라도 가릴 수 있는 거점 진료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백 간호사는 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흙으로 빚어 쌓아 150평 규모의 진료소를 지었다.
봉사는 그의 삶이 됐다.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 100명이 넘는 환자를 돌봤다. 생활비는 최소한 생필품 구입에 쓰고, 나머지는 모두 의약품이나 봉사활동에 썼다.
◇연 20만명 치료 가능한 병원 설립
어느 날 얼굴이 창백한 아이가 진료소로 찾아왔다. 당시 진료소에는 수혈 장치 등 응급시설이 없었다. 말라리아에 걸렸던 그 아이는 끝내 숨졌다. 다른 증세가 심각한 환자들을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 이송하기도 했지만, 병상이 가득 차 환자들이 복도까지 나와 누워 있기 일쑤였다. 백 간호사는 “내 손에서 아이가 죽어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라며 “응급상황에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백 간호사의 의료 봉사 이야기를 들은 한 기업인의 도움으로 2008년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 180병상 규모의 대양누가병원을 세웠다. 현재 200병상까지 늘어 연간 20여만 명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시설로 성장했다.
2010년에는 간호대학과 정보통신기술대학 설립을 주도하는 등 보건의료와 교육환경 개선에 힘썼다. 그는 “이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 고민을 했는데 교육이 답이라고 생각했다”며 “좋은 간호사들을 키워 이들이 환자들을 자기 생명처럼 잘 돌 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암 수술 후에도 봉사활동 계속
백 간호사는 암 투병에도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10년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2011년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말라위로 돌아갔다. 면역력이 떨어진 탓에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땅을 밟은 지 30년이 흘렀다. 말라위 도시는 병원과 학교가 들어서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시골은 과거와 똑같은 실정이다. 백 간호사는 “전 세계가 두려워하는 코로나의 심각성에 대해 현지인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말라리아로 죽으나 코로나로 죽으나 매한가지라 부자들의 병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봉사는 제 삶의 전부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서 제가 맡은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간호사는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지난 4월 한국에 들어와 고향인 제주도에서 머물고 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폐쇄됐던 공항이 열리면 다시 말라위로 돌아갈 계획이다. “현지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와나갈 계획이에요. 사람들이 못 먹기 때문에 질병이 생기는 악순환이 생기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의 새마을 운동처럼 병원에 못 오는 마을 개발 사업도 하고 싶어요.”
시상식은 다음 달 18일 JW중외제약 본사에서 열린다.


